‘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생각해본 공직의 길

 

또다시 걷고 싶은 산티아고 순례길!
가을이 불타고 있다. 푸른 하늘을 보면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어디가 좋을까?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다들 산으로 떠난다. 나는 한적한 산길이나 바닷길을 마냥 걷고 싶다. ‘지리산 둘레길’도 좋고, ‘동해안 해파랑길’도 좋다. 무엇보다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또다시 걷고 싶다. 최근에 《월간 산》이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5년 내 꼭 가보고 싶은 해외 명산 10곳을 선정한 바 있다.

 

1위가 히말라야고 2위는 알프스, 3위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나왔다. 또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자협회’에 따르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자 수가 한국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 정도로 많고, 유럽 이외의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많단다. <스페인하숙>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하고, 어느 자동차 광고의 배경이 된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모름지기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푹 빠져 있다. 


자,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 무엇인가? 스페인과 프랑스, 포르투갈의 산과 들을 지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천 년간 이어져온 성지 순례길로 시작되어, 지금은 한 해 50만 명 정도가 종주하는 자기 성찰의 길이고 자연 교감의 길이기도 하다. 필자도 작년 가을과 겨울 3개월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바 있다. 프랑스의 르 퓌(Le Puy En Velay)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 초입의 생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를 지나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한 다음, 다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이어지는 2000㎞의 대장정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에도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 천년의 순례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마을과 도시, 동고동락했던 이국의 순례자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그 머나먼 이국의 땅 산티아고 순례길로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뭘까? 다들 세상의 삶이 쉽지만은 않다. 늘 뭔가 불안하고 힘들어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방황하고 있다. 지나친 경쟁의 전쟁에서 지치고, 불공정한 플레이에 분노하고 있고, 불투명한 앞날에 암울해하고 있다. 별로 안녕치가 못하다. 또 우리네 중장년들은 어떠한가?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지만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상실과 우울, 불안과 초조의 마음이 불현듯 나타난다. 별로 행복하지가 못하다. 이럴 땐 삶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그냥 한없이 마냥 걸으면서 우리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줘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가는 길, 그것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는 이유가 아닐까. 필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것도 삶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33년 공직의 긴 여정에서 막 벗어나는 순간 황야에 버려진 한 마리 사슴에 불과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하나의 매듭이 필요한 것이다. 인생 1막 정리 없이 인생 2막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요동치는 격정을 진정시키는 마법, 그것이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걸으면서 생각해본 나의 33년 공직의 길
기나긴 공직생활이었다. 1985년 봄, 과천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사무관으로 시작해, 2018년 가을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중앙공무원교육원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명칭이 바뀜)을 끝으로 무려 33년 6개월의 긴 공직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그동안 거쳐 온 기관만도 무려 9개에 이른다. 부산광역시청에서 수습 사무관을 지낸 후 경남도청에서 공직의 청년기를 보내고, 대다수는 행정안전부에서 과장과 국장, 실장을 하면서 보냈다. 지방세제국장으로 있으면서 지방재정분권정책의 금자탑으로 평가받는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도 도입했고, 지역발전정책국장 때에는 국가종주자전거길도 기획하고 만들었다. 중간에 LA총영사관에서 외교관 생활도 해보고, 청와대 정책실장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국정의 큰 틀 속에서 정책을 보는 안목도 경험했다. 1급으로 승진해서는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과 지방자치발전위원회(현재의 자치분권위원회)의 지방자치발전기획단장과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도 거쳤다. 마지막 직위가 차관급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었으니 돌고 돌아 처음 공직을 시작한 곳으로 회귀한 것이다. 아, 얼마나 멋있고 명예로운 일인가…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이. 


작년 10월에서 12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늘 생각의 언저리에 머문 주제가 33년 공직의 길이었다. 무엇을 찾고 무엇을 이룩한 길일까. 과연 성공한 길일까, 공직의 동료들은 떠나간 뒷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러 가지 화두 중에서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 하나 있다. ‘공직생활을 이처럼 명예롭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공직의 동료들 덕분이다’는 것이다. 사실 현직에 있을 때는 잘 몰랐다. 앞만 보고 달렸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세상은 앞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옆도 보고 뒤도 돌아봐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33년의 공직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상사와 동료들의 가르침과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무엇보다도 나를 믿고 열심히 일했던 부서의 직원들 덕분이라는 것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진정으로 알게 됐다. 이들과 밤새워 고민하기도 했고, 도전과 열정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쓴 책인 《순례, 세상을 걷다》 서문에서 “이 책을 인생 1막에서 함께했던 공직의 동료들에게 헌사하고 싶다. 늘 그들의 도움과 사랑 속에서 성장해온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공직의 길을 걸으면서 늘 ‘꿈꾸는 정책가’이기를 지향하면서 보냈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듯이(人死留名 虎死留皮), 공무원이 죽으면 정책을 남겨야 한다(公務員死留政策)”고 늘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정책학을 가르치고 좋은 정책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삶의 전부였던 공직의 길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영원할 것 같은 공직생활도 언젠가는 끝이 나는 게 자연의 섭리다. 이 가을에, 각자가 걸어온 공직의 길을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후배들에게는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조직에는 무엇을 남긴 공직자인지를 성찰해보자.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끝없이 걸으면서 지독한 고독 속에서 고요를 느껴보자. 그리하여 저 ‘산티아고 순례길’에게 그 길을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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